추억속으로(into the memory)

가을밤과 군인 아저씨

yodel 2006. 9. 21. 02:40

그때는 수진이네 집에 살때였어. 수진이 엄마, 아빠는 두분다 선생님이셨고,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살고 계셨지.  수진이는 엄마를 닮아서 미술을 잘 했고, 경수는 아빠를 닮아서 수학을 잘했었던 것 같아. 엄마랑 오빠들이랑 나는 집주인었던 수진이네에 셋방으로 살았었지.

오빠들은 중학생때부터 기숙사에서 살았기에 집엔 늘 나 혼자만 있었어.

엄마가 표현하는 식으로 말하면.."싸댕기고 논" 나였지.

나는 아마 중학교 1학년이나 되었을까?

 

시원한 산들 바람을 느끼며 반듯하게 서있었던 큰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방천으로 마치 자유를 찾아 헤매는 소녀처럼 나는 가을을 보냈지.

동네 아이들과 매일 저녁이면 노래 자랑, 숨바꼭질,...집에서 엄마가 찾아 부르기전까지 밤 근무에 바쁜 나였어. 아마 가을 이맘즈음 이었을거야. 여느때처럼 우회도로에서 만난 우리들은 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러고 있는데...왠 군인 아찌들이 차를 세우더라고..

듬직한 군인 아저씨들...가로등빛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린 마음에 멋지다고 생각했었어. 그 아저씨들이 우리들 옆에 앉아서 잠깐 구경하다가 " 너희들...우리 군부대에 와서 노래해 볼생각 없냐?.." " 우리한테 위문 편지라도 써 주지 않을래?"

 

아저씨들의 녹색 차를 보면서, 가슴이 뿌듯~ 나는 나라를 위해 할 수있는 딱 한가지의 봉사는 분명 아저씨들께 편지도 보내고..위문 공연? 도 가는거라 생각을 했지!

뭐..그 다음날부터 우리는 매일 밤..우회도로 가로등 아래에 모여 어떤 춤을 집어넣을까? 어떤 노래를 할까? 연구를 했었어. 연습도 했지만..동네 여자아이들과 함께 그 군인 아저씨들께 편지도 썼었지.

 

아마 몇 달동안 편지를 썼었나봐.

답장도 받고...

 

동네 친구네에 가서 놀고 있던 어느 날이었는데..

친구가 어떤 사람이 찾아왔다는 거야. 나는 가면서도 누가? 하고 계속 물어보았는데...히히덕 거리며 대답을 안하고는 자꾸 내손을 잡아 끌어 우리집앞으로 데려 가더구만...

가보니~ 글쎄 그 군인 아저씨였어. 에겡? 군인 아저씨가 왜?

지금은 다 잊어버려서 기억이 나지 않지만...너무 역겨웠던 기억이 있어.

그렇게 나이 많았던 아저씨?가 나를 찾아 왔다는거....징그러워서~ 혼이 났지.

그 다음부턴 편지도 안 쓰고..위문 공연도 취소하고...마음속으로만 그리던 용감하고 굳센 군인 아저씨가 현실로 나타난게 큰 상처가 되었던거 같아. 후후훗~

 

**

지금 생각하니 그 군인..이제 만으로 19살이 되었을 어린 나이?였을텐데 가을날 외로웠나보다.

별 볼일없는 십대 소녀를 찾아 오고.....글로 만나 혼자 별 생각을 다 했겠지 생각하니~

그때 얼굴 찡그리길 너무 잘했다 싶었다. 철없던 내가 잘 한일중의 하나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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