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미국 사는 아줌마의 일상)

할머니!!

yodel 2010. 2. 2. 23:32

나에겐 늘 한결같이 느껴지는 분이 계시다.

고운 미소를 지니신 할머니..가끔씩 나에게 전화를 해오시며 안부를 물어주시던 할머니..피로 연결이 되지 않았지만 날 친손녀처럼 여겨주셨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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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으로 처음왔을때 그분은 그때도 할머니셨다. 17년전 미국으로 막 와서 할머니댁에서 삼일을 보냈었지.  작고 아담한 집엔 아기자기한 물품들 보다도 세월을 말해주는듯한 책들이 책꽂이에 풍성하게 놓여져있었다. 두분 둘다 교직에서 일하셨던태가 집안 분위기에서 뭉실뭉실 흘러나왔다.

할머니는 외국인인 나를 둘도없는 손녀처럼 대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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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할머니의 연세가 아흔 다섯이랜다.

지난번 전화 통화를 할때 난 여즉 여든 일곱일거라 생각했다.

할머니는 나에게 가끔 전화를 해주시는데..내 이름까지 기억하시니까(아니 내 이름이 쉬운 이름이냐구요? 미국 사람에게..)난..여즉 여든 몇일거라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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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댁을 찾아가는게 새삼 어려웠다.

벌써 10여년이 흘렀으니까...남편 출장을 따라와 나는 남편을 그의 사무실에 데려다주고 이른 아침 할머니를 뵈러 가는중이었다. 주변은 아직도 해가 뜨지 않아 어두웠지만..나의 가슴은 그분을 본다는 설레임과 상쾌함 그리고 가슴애리는 그리움으로 요동을 쳤다.

할머니의 집앞..아!

문을 열고 잠옷 바람으로 나오시는 우리 할머니..아직 옷을 갈아입지 않으셨다면서 날 안아주시는데..

할머니의 향이 나를 감싸준다.

이젠 어깨도 뼈만 앙상하게 남고, 손가락도 마디마디가 굽어 오래된 나뭇가지를 연상캐한다. 움푹패인 눈과 필름을 덮어 쌓놓은 듯한 눈동자엔 그리움만이 남았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시더니 아침을 준비하신단다.

내가 해주어도 된다고 하니까 아직까지 오믈렛정도는 만들줄 아신다 그러더라.

머그잔 두개를 놓더니 그곳에 달걀 두개를 톡톡 깨뜨려 넣으신다. 그러더니 힘없는 손으로 냉장고에서 우유를 가져와 머그잔안에 조금 부어넣더라. 그리고 여든 몇년의 세월에 익숙한 손놀림으로 머그잔에 있는 우유와 달걀을 섞으신다. 레인지에 데워 나와 할머니에게 맞는 양의 아침을 대접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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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어깨를 주물러주면서 괜시리 가슴이 울쩍해졌다.

이젠 정말 며칠이나 남았을까? 아니 몇년동안은 더 살 수있겠지? 하면서..

나도 세월이 흐르면 우리 할머니처럼 그리 늙을텐데...마지막에 열심히 살았노라고..회상을 하며 지낼 수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할머니집을 나올때 내가 그랬다.

"할머니 4월달에 할머니집에 올땐 제 아이들 모두 데리고 올테니까..그땐 오믈렛 다섯인분 추가예요!!" 라고...

뼈만 앙상한 할머니의 작은 가슴을 안아주며 언제 가실지 모르는 그분의 모습이 지금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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