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으로(into the memory)

미국 생활 16년째- Sweet 16

yodel 2008. 5. 14. 10:18

1992년 5월 13일이었지.

비행기를 생전 처음으로 타보았었던 때가...

촌닭이었던 나(닭띄니깐 말이되네. ㅎ)

단발 파마머리 치렁치렁 흔들면서 언니랑 남대문에서 구한 큰 짐가방 두개를 들고,

미국이란 나라에 첫 발을 디뎠어.

첫 몇달은 강의시간에 대답하라고 할까봐 어찌나 무섭던지..

늘 명랑하다 생각했던 나의 성격도 미국이란 나라에 오니 고양이 앞의 겁먹은 쥐처럼 소심해 지더라구.

말하는게 듣는것보다 많이 힘들었던것 같아. 요새 문자 보내려하면 자판기 보면서 찾아야 하는 나처럼..그때 영어 실력이 그랬어. 머리로는 감이 오는데..입으로는 영 앞뒤가 안 맞는...자존심 무너졌던 나날들.

*

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었지.  (미국 생활 3~12개월동안)

일단 돈이 부족하고 다음학기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니 한푼한푼이 소중했던 그런때였다.

다행히 IMF가 터진 당시라 몇몇 학교에선 외국인들에게도 파트타임으로 일을 할 수있게 해주었지.

난 하루 4시간씩 학교내 식당에서 잔 심부름을 했었어.

주로 식당 요리사 아줌마들의 시중을 들었지.

타코를 만들면 맛을 본다던가..샌드위치를 만들던가..음식을 진열해 놓는다던가..그런거~

그런데 아줌마들 나를 부르는걸 너무 힘들어 하셨어.

나한테 매번 이름을 물어보시는거야..일일이 가르쳐줘도 따라서 하는게 힘들어 하셔서..

어느날 그랬지.

"현대 자동차 알죠? "그랬더니 그 아줌마들 "어...헌다이? " 그래서 "헌"을 말한다음 "주"만 부치면 된다 일러주었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헌주.."그러는거야. 그정도면 현주와 비슷하니 �다 생각해서 나도 내심 만족이었어.

그러던 어느날..식당이 아주 바쁜 날이었거든.

대장 아줌마 너무 급하게 내가 필요했었나봐. 쩌어기 멀리서 나에게 손짓하며 내이름을 부르는데~

"Hondai.. Come here!" 그러는거 있지.(그 아줌마 일본차 생각하면서 이름을 부른것 같아..ㅎ)

내가 일러주었던 현대 자동차는 생각이 나는데 그 뒤에 "주"를 부친다는게 떠오르지 않았던 그 아줌마..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또, 이런 경험도 있었어. (미국 생활 4~5개월정도)

내가 살았던 집에서 학교까지 버스로 40분이 걸렸거든.

늘 타던 버스를 타고 갔는데, 남쪽으로 가는 버스를 북쪽으로 가는 버스로 착각해서 반대방향으로 가버렸지. 나중에서야 내가 가는길이 아닌걸 발견하고는 종점까지 갔던적이 있었어.

그때 버스비가 75전이었던것 같은데...1불짜리 현금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아 얼마나 막막했었던지....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돈이 없었으니, 내려서 어떤 건물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하늘이 도우셨는지..아는 친구가 그 건물에서 나오는 중인거야.

그 친구에게 "1불만 빌려달라했지.." 그때처럼 1불이 고마웠던 적이 없었던것 같아. 하마터면 고아가 될번 했는데~~

*

그럼..이름도 그렇고, 말하는것도..생활하는것도 그땐 불편한게 많았어.

아마도 자식들 낳고 키우면서 바라보는 관점이 틀려진것 같아.

아이들이 작았을땐 내 나라가 아닌 이곳이라 늘 고국을 그리워했던것 같았고..

그런데 어느 순간 녀석들과 사회 생활에 어울어지다 보니 사는것에 대한 재치가 생겼다고 해야할까?

그럼..외국 생활 한다는거 쉽지만은 않은 생활이야.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

무엇을 하던지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면 어려운 문제도 쉽게 해결된다고..

그리움이 뭉쳐서 외로움이 될때가 수도 없었지만...가족이란 단위가 주는 힘때문에

내가 사는 미국 땅이 그리 낯설게 안 느껴져.

조금 마음의 눈을 크게 뜨면 다른이들이 보는것들도 간혹 이해가 되거든~

그래서 나는 미국 생활 16년을 나름대로 나의 달콤한 16년이라 부를거야....Sweet 16!!

 

(PS: 미국은 한국보다 하루가 늦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희 사는곳은 지금 5월 13일 저녁 9시 16분이구요. 한국은 오전 10시 16분이지요. 오늘을 보내기 전에 잠시 추억을 꺼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