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으로(into the memory)

사춘기, 친구, 그리고 엄마

yodel 2005. 11. 25. 01:17

 

중2 때였던가?

같은 반의 그녀는 늘 이쁜 옷에 없는게 없던 아이였어.

패션이 담긴 안경을 쓰고, 뽀얀 얼굴에 귀엽고 조그만 입술의 주인공인 그녀가 내 친구인걸..

그녀가 나를 빨아들이는 마력..대단한 흡수력이 있었지.

 

내가 가진게 없어서 였을까?

아침, 저녁으로 리어카를 끌고 장사나가시는 울 엄마..

집이라고 들어와봤자..덩그라니 훵한 방바닥만이 날 기다렸지.

 

내가 사춘기가 시작한게 틀림이 없어.

방바닥을 훔치면서..이쁜옷..한벌도..세련되게 입어보지 못한 내 모습..갑자기 세상에서 초라한 사람으로만 보이는게 왠지..그까짓 이쁜옷..별거라고..

 

아니야..이쁜 옷을 부러워 하는게 아니었어.

아마..그녀가 가진 뭔가가..나에겐 없어서 일지도..

 

울엄마..그땐..입에 풀칠하려고 아침, 저녁..밤낮으로 신경 쓸 틈이 없으셨을텐데..

내가 철딱성이가 없이 엄마의 눈빛이라도 바라봤음 하고 너무 원했던거야..

 

그녀랑..늘 붙어다녔어.

한참을 걸어서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면..

아버지가 중동에서 보내주셨다는 귀한 선물로 집안이 장식되있고..

그녀의 어머닌..보험인지 뭔지를 하느라..안계셨었지.

 

그녀..돈이 하늘에서 나오는지..

펑펑 쓰고 다녔지.  그녀는 나를 롤러스케이트장으로 오락실로 데리고 가더라.

그때..롤러 스케이트장..오락실...바람난 아이들만 가는곳이잖아..

 

어차피 집에 들어가도..별 볼일 없고..집을 피해 자연스러운 그런 곳에 그것도 꽁짜로 갈 수있다는 자유..내가 느끼는 자유라고 느꼈지.

오락실에서..겔러그를 하는 재미를 붙였었어..오른손..검지로 빵빵 눌르면서 총을 재빠르게 쏴야되는 그런 겔러그를 갈때마다...했었지.  물론 돈은 그 녀가 내고...

 

다른것엔 욕심도 없이 살면서..

겔러그는 그렇게 잘 하고 싶더니만..오락실 아저씨..날 이쁘게 봤던지..

내가 갈때면 그 열쇠로 돈없이 할 수있게 열어주시더라..

쌩쌩 잠자리가 일렬로 날아올때...그 자리에서 따다닥..한꺼번에 발사할때까지..

실력이 많이 늘었을때였지...

 

학교에선 소문이 일어나기 시작했어.

내가 바람났다고..바람이 났대..글쎄..

신바람이 났나?  아님..겔러그 바람이 났나?

우리 오빠들이랑, 언니를 가르치셨던 선생님이 교무실로 부르시더라.

그런 아이완 함께 다니면 안 된다시며...

그런 곳에도 가면 안된다시며..

오빠들도 언니도..공부 잘했는데..너도 잘해야 하는데..하시며..

 

이해를 할 수가 없었지..뭐..

그녀랑 다니면서 내 할일 다 챙기는데..그게 뭐 나쁜건지..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그러길 몇달이 지났나봐.

그녀..오락실에서 회색옷에 회색 바지를 입은 멋진 남학생에게 뿅가서..

남자 친구, 여자 친구 한다더라.

나는 겔러그가 좋아..그녀는 그 회색옷을 입은 그가 좋아..

오락실에 자주 갔었어.

 

글쎄..그 남학생..무슨 깡패두목이라는 거야.

태권도도 몇단이고..거느리는 남자들이 많데대.

그 시골에서 중학생들이 깡패가 어쩌구 저쩌구..

 

한번은 그 무리들이랑..물론 내친구가 두목의 여자친구니깐..

나도 그녀따라..산속깊은 곳으로 가본적이 있었지.

산등성이를 따라 한 없이 올라가면..평지같은 곳이 나오는데..

다들 그곳에 모여 앉았어.

 

그러더니 "이성 친구" 있는 사람들만..깊은 숲속으로 다들 빠져나가는 거야.

나랑 서넛 남학생들하고 그 곳에 기다렸지.

아니..그 중에 한 남학생이 면도칼을 불쑥 내놓더니..입안에 놓고 아그작 아그작 씹는거야.

머리 털이 빠져나오는 줄 알았다니까..무서워서...

 

한참있다 나온 그 사람들..내 친구 안경이 부러졌대나..어쪘대나..

그땐 뭔지 모르고 다시 그 언덕길을 내려왔지.

 

늘 이런 하루를 보내고, 아마 통지표를 받았던 하루였어.

학교를 마치고 그 날도 빈 방에 책가방 가져다 놓고..오락실로 향해야겠다 생각하면서..

 

50미터도 안되던거리에..

허스름한 옷을 입고, 녹색 돈주머니를 걸친 울 엄마..고개숙이며 아무 말씀도 하지않으시는 모습에..뾰쪽구두를 신고, 빛나는 핸드백을 걸친 어떤 아줌마가 삿대질을 하면서..

"당신 딸땜에 우리딸 망쳤어!.어떻게 할거야?.. 응? 니가 책임 질거야! 딸 교육을 어떻게 시켰으면 우리 얌전한 딸 데려다..이런 꼴로 만들어?  하는 거다.

 

울 엄마 모습 나 잊을 수가 없어.

고개도 못 들으시며..그냥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며..단지 "죄송하다"는 말씀만 하실뿐...

나..얼굴 들수도 없었어.  내가 챙피해서가 아니라..

그 아줌마가 뭔데..삶에 힘든 울엄마를 그렇게 낮게 보는 그녀의 엄마가 미워서.

 

집으로 들어간 그 날..엄만..아무말씀도 하지 않으셨어.

나는 그 날로 그 녀를 내 기억에서 지워버렸지.

그리곤 그 좋아하던 겔러그와 그 오락실 아저씨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어.

엄마의 그 모습과 죄책감이 어울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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